-=조그녕이야기=-/---조그녕

항공시장의 회복 그리고 리턴.. 그에 대한 기록

조그녕 2023. 3. 24. 09:38

조종사가 되기 위해서 수년간 노력했던 나의 꿈은 2020년 코로나를 기점으로 산산히 무너졌다. 같이 입사했던 동기들, 전형을 준비하고 있던 친구들을 포함한 조종사 대부분이 일자리를 잃었다. 채용문은 굳게 닫혀버렸고, 외항사에 취업했던 조종사들도 계약만료로 한국으로 돌아왔으며, 라인에 있던 기성 조종사들도 항공수요가 급감하여 비행을 격달로 하고 기본급과 비행보장시간을 삭감하는 등 생활고를 겪을 수 밖에 없었다. 2017 ~ 19년 활황기를 보내던 항공사들도 항공기를 반납하고 국제선 노선을 폐지하는 등, 각 국가의 정책에 따라 대대적인 사이즈 줄이기에 들어갔다. 유류비나 대외적인 상황에 많은 영향을 받는 업종이긴 하지만, 이렇게 까지 될 줄은 그 누구도 생각도 못했다. 혹자는 IMF보다 더 힘든 시기였다고 한다. 대표적으로 이스타항공은 20대의 임차항공기를 3대로 줄였고, 다른 항공사들도 도입 계획을 취소하고 리스가 만료된 항공기를 반납하면서 남는 조종사들의 수가 많아졌다. 

과연 그 때, 어떤 일이 있었을까? 그 당시 뉴스로도 많이 나와 전국민이 알게 된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이스타항공의 해고 사태를 눈앞에서 지켜보면서, 이 길에 든 것을 후회했다. 부모님과의 연락이 꺼려지고, 무슨일인지 물어보는 친구의 연락이 조금 어색했다. 눈치빠른 일반직 직원들은 탈항공업 하거나 나처럼 갈 곳 없는 인원들은 국가에서 지원하는 직업교육센터에 가서 여러가지 기술을 배워야 했고, 다른 일자리를 모색해야 했다. 이 시기에, 사업용 조종사 면장은 하등 쓸모가 없었다. 항공사에서는 정말 인정받는 자격증이지만, 내가 다른 직종에서 일할 때는 전혀 쓸모가 없었다. 어디 사무직에 취직하려고 해도 오히려 독이되는 자격증이었다. 상황이 좋아지면 다시 돌아갈까봐 채용을 꺼리고, 인사담당자에게도 그다지 좋지 않은 인상을 주게되었다. 그나마 주변에서 취업이 많이 된 곳은 드론, UAM 관련 사업체이다. 국가 및 민간기업에서 사업을 확장하느라 많은 항공업 종사자들은 일자리를 얻어 생계를 유지할 수 있었다. 물론 그들 중 똑똑한 몇몇은 운항승무원 경력직 채용이 재개되자 바로 돌아갔다.

AOC를 막 발급받았던 3개의 항공사(에어프레미아, 에어로케이, 플라이강원)는 항공기를 들여오지도 못해, 재정적인 부담을 안고 있었다. 다만 다행인 것은 기체를 보유하고 있지 않으니 리스비가 덜 나간 정도. 하지만 이 역시 지배구조가 계속 바뀌는 것을 보면 손해가 막심한것을 알 수 있다. 항공사들이 많아져야 항공업계 사람들의 임금도 높아지고 처우도 좋아지는 터인데, 오히려 비행기를 줄이고 신생항공사가 영업을 하지 못했으니, 오히려 그 반대였다. 예를 들면 미국은 조종사의 부족으로 2022년 후반부터는 임금이 폭발적으로 상승했다. 지금도 Pilot shortage를 겪고 있으며, 그린카드만 있다면 어느 항공사에서나 근무할 수 있다고 한다. 한국은 국내선 수요가 비교적 적고, 노선이 많지 않아 미국의 상황과는 조금다르지만, 천천히 미국을 따라가고 있음을 느낀다. 아무튼 2022년 후반이 되자 각 신생항공사들은 기체를 도입하기 시작했고, 2023년 현재는 여러가지 노선 전략으로 날개짓을 펼치고 있다. 에어프레미아는 대한항공과 아시아나 합병으로 떨어지는 노선을 받아 미국, 유럽 장거리 노선을 공략하고 있고, 에어로케이는 청주기점, 플라이강원은 양양기점으로 사업을 확장해 나가고 있다.

2021년 어느 비행낭인(나를 포함)들의 술자리에서 일본에 관한 얘기를 하고있었다. 2019년 초에는 '노재팬운동'으로 일본노선의 여객 수요가 급감해서 항공사들의 수익이 많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저비용항공사의 큰 비중을 차지하는 노선인 터라, 채용 시장은 이 때 부터 얼어붙기 시작했다. 2019년 후반에는 다시 수요가 돌아오는 듯 했으나 코로나가 호흡기를 떼버렸다고 할 수 있다. 한 친구의 태도는 노재팬을 옹호하는 입장이었다. 일본 제품을 사지 않고, 일본 여행을 가지 않는 것도 당연하다고 생각한 것이다. 정부의 결정과 국민적 여론으로 인해 유니클로를 포함한 일본 기업들은 줄줄히 망하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다들 환호했다. 일본을 적으로 인식하고 정부의 정책에 따라 교류를 안하는 것이 복수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 이면에 있던 직원들의 생계는 생각하지 않았다. 역사적으로, 양심적으로 일본의 과거와 현재 사과하지 않는 태도에 대해서 분개하고 화낼 수 있어도 일본과의 관계가 내 밥줄을 잡고 있다 해도 응원을 하는게 맞는건가?  나는 그 친구가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 노재팬으로 피해보는 사람들은 우리 항공업 사람들, 나 자신이었다. 그 친구도 조종사 취업을 앞둔 상황이었는데, 그 사태를 두고 아직까지 응원한다는게, 자기의 일자리를 없앴다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얼척이 없었다. 재밌는 것은 2023년 지금. 한국과 일본의 노선 수송량이 최대치를 기록했다. 코로나가 해소되자 모든 사람들은 일본으로 향했다. 주위를 둘러보면 일본을 안간 사람이 없었다. 무슨 일이 있었냐는듯, 일본노선은 매번 만석을 기록하는 중이다. (개인적인 의견일뿐입니다)

신체적으로 힘든 것보다 더 버티기 힘든 것은 정신적인 고통이다. 정말 많이 울었다. 일하고 퇴근하는 밤길이 싫었다. 이렇게 자고 일어나면 모든게 꿈이었으면 좋겠다고 매일 밤마다 생각하며 잠에 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큰 상처를 이겨낼 수 있었던건, 같이 비행했던 사람들과의 교류 그리고 대화, 나를 응원해준 사람들 덕분이었다. 처음 비행을 시작할 때 만났던 울진 사람들, 미국 비행학교에서 만난 친구들, 제주항공에서 같이 근무했던 직원들, 이스타항공 동기들 모두가 서로서로를 도와줬고 지탱해줬다. 술자리를 가질 때는 안좋은 얘기만 하게되고 기분도 좋지 않아서 술자리는 꺼렸다. 하지만 서로 연락하고 지내면서 상황이 좋아질 거란 믿음을 공유했다. 개인적으로는 스포츠를 통해 스트레스를 해소했다. 미국에서 같이 비행한 몇명과 각 항공사에서 근무하는 분들과 조금씩 아이스하키 팀을 키워나갔다. 2021년, 2022년은 하키로 가득한 한해였다. 왜 그렇게 미쳐있었는지 모르겠다. 눈뜨면 링크장이었고, 밥먹고 카페가서 얘기하다가 집에오면 잘 시간이었다. (덕분에 살도 많이 쪘었다.) 얼어붙은 채용시장, 고립된 상황에서 사람들과 교류하는 것이 내 마음에 정말로 큰 위안이 되었다. 항공사에 재직중인 형들에게는 회사 소식을 들을 수 있어 좋았고, 같이 항공사를 나와 쉬고있는 동료들과는 같은 감정을 공유하면서 버틸 수 있었다. 소셜 바운더리 안에서 공통된 주제로 얘기할 수 있는 것, 힘든 점을 나눌 수 있다는 것이 큰 도움이 된다는 것을 알았다. 

이젠 좀 되자

2년 정도 쉬었으려나.. 운 좋게 2022년에는 CAE에서 근무를 시작했다. 플심을 어렸을 때부터 해서 그런가? 친한형의 추천으로 입사할 수 있었다. K항공 훈련센터에 근무하면서 시뮬레이터 프로파일 디벨로퍼라는 생소한 직무를 맡았다. K항공에서 프로파일을 보내주면 그에 맞는 디테일한 인스트럭션을 만드는 것이었다. 몇만시간 비행한 베테랑 외국인 교관들과 함께 근무하면서 꼭 그들처럼 되고싶다고 생각했고, 항공업에 다시 발을 들이니 비행에 대한 꿈이 다시 생겨났다. 다시 하나하나씩 비행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힘들었던 시절들, 그리고 묵묵히 버틴 시간들을 하늘에서 인정해준 탓일까? 필기, 실기, 1차, 2차면접까지.. 하나씩 밟아나갔다. 그 결과 만 3년 만에 항공사에 다시 입사할 수 있었다. 항공업에서 다양한 직무로서 근무해본 경력과 경험은 큰 장점으로 작용했다. 어쩌면 더 좋은 결과일지도 모른다며 나 스스로 위로했다. 3년이라는 시간동안 겪었던 라떼 시절의 이야기는 그냥 단순히 라인에서 근무하기만 했다면 몰랐었을 일이다. 이제 어떠한 풍파가 와도 이겨낼 자신이 있다. 더 힘든일이 와도 사람들과 함께하면서 극복하는 경험을 통해 어떤일이 닥쳐도 해결할 수 있다는 인생의 지혜를 얻었다고 생각한다. 3년을 요약하기에는 너무나도 짧은 글이지만, 조금 지나고, 모두가 복귀하고, 항공업이 다시 살아나면 그 땐 그랬지 하면서 허심탄회하게 당신의  극복 스토리를 댓글로 볼 수 있기를 바라며...

인생은 영화보다 더 드라마틱하다.

반응형